대한민국 항공운송업계의 선구자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영욕의 반세기

항공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선구자…말년에 일가족 갑질 논란 등 잇단 악재로 ‘경영권 박탈’ 불명예

  • 기사입력 2019.04.08 16:14
  • 기자명 이의정 기자
(사진출처=한진그룹)
(사진출처=한진그룹)

대한항공 50주년을 맞아 항공 산업계에 급작스런 비보가 전해졌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별세 소식이다. 대한민국 항공 운송 산업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조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은 재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1974년 한진그룹에 몸담은 지 45년 동안 조회장은 평생을 항공 운송 산업에 몸 바쳐 일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세계 항공사로 이끌었고 국제 항공업계에 위상을 높이는 등 선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말년에 자녀들의 갑질 논란과 부인의 폭언 폭행 논란, 조 회장 본인의 횡령 배임 혐의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한진그룹 경영권 박탈이라는 굴욕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조 회장의 영욕의 반세기를 정리해 보았다.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에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의 장남으로 인천에서 태어났다.

경복고와 인하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하면서 항공 운송사업에 발을 내딛었다. 1980년 2차 오일쇼크로 항공 산업에 위기가 있었으나 계획대로 항공기를 구매하는 등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에 올랐고 1992년 대한항공 사장이 되었다.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상황에도 유리한 조건으로 항공기 구매계약을 체결하며 대한항공 성장의 초석을 마련했다.

1999년에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되었고 2000년 미국 델타항공 등을 설득해 항공 동맹체인 스카이팀을 창립했다.

(사진출처=한진그룹)
(사진출처=한진그룹)

조 회장은 2003년 한진그룹 회장이 되었다.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 SARS, 9.11 테러의 영향으로 항공 산업이 침체기를 맞았지만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는 대한항공의 성장에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또 2008년 7월 저비용 항공사, 진 에어를 창립하여 대한민국 항공시장에 저비용 항공시장 수요를 넓히는데 기여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경영 감각을 인정받아 에쓰오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조 회장은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래 2009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실제 유치까지 성사시켜 국가 위상을 높였다.

하지만 각종 풍파도 겪었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경영난으로 위기에 봉착한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사재까지 털어 지원에 나섰으나 2016년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17년 청산됐다.

2014년에는 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자 조 회장이 직접 사과까지 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이후 부인 이명희씨 등까지 폭행 및 폭언 등 논란에 연루돼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조 회장도 270억 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서울남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이런 악재 속에서 조 회장은 2019년 3월 27일 주주총회를 통해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한편, 조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조 회장을 피고인으로 한 형사재판 등이 즉시 중단될 전망이다. 장례 일정 등을 이유로 부인 이명희(70) 씨와 딸 조현아(45)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재판도 모두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에 대한 재계의 평가는 한결같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세계 항공사로 키운 일등공신이며 우리나라 항공 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며 “조 회장의 업적을 치하하고 삼가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환경경찰뉴스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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