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 채동욱 부회장,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전화 ‘모르쇠’ 응대

판매책임 여부 질문에 “1차 책임 SK, 본사와 무관” 시치미 떼
2016년 검찰 수사 당시 임직원 자료 삭제·폐기 정황 재조명

  • 기사입력 2019.04.23 11:07
  • 기자명 임영빈 기자
채동석 애경그룹 부회장(사진출처=애경그룹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채동석 애경그룹 부회장(사진출처=애경그룹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애경그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대못을 박아 논란이 일고 있다. 장영신 애경그룹의 회장의 차남인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고위 임원들이 피해자들을 상대로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채 부회장은 지난 15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전화 통화에서 본인의 신분을 ‘부회장’이 아닌 ‘비서’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애경 측의 책임 여부에 대해서도 “국가가 1차적으로 판매 허가했고 SK가 이를 넘겼기 때문에 1차적 책임은 없다”고 답했다. 심지어 채 부회장은 피해자와 통화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신분을 바로잡지 않았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단 해당 녹취 파일의 목소리는 채 부회장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채 부회장이 신분을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화를 건 상대방에게 수차례 ‘여보세요’라고 말을 건넸으나, 상대방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렇게 했다”며 “그러나 상대방과 통화는 성심성의껏 응했다”라고 해명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은 원인불명의 폐 질환 환자가 2011년 5월부터 대량 발생하며 부각됐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이들의 폐에서 섬유화 증세가 일어났는데 폐질환에 걸려 사망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산모와 영유아들이어서 충격은 더욱 컸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유공바이오텍이란 회사에서 개발한 제품이다. 당시에 ‘가습기 메이트’ 이라는 제품명으로 시장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1998년 SK케미칼이 제조·판매 권리를 획득했으며 이후 2001년 애경산업과 가습기 살균제 물품 공급 계약, 2011년 제조물책임(Product Lability·PL) 관련 추가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면서 애경그룹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애경 측은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공분을 샀다. 특히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를 필두로 그룹 고위 임직원들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관련 자료를 은폐·폐기해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고 전 대표는 지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검찰 수사가 개시된 직후, 회사 직원들이 사용하던 업무용 컴퓨터, 노트북 등에 저장돼있던 파일을 삭제하고 컴퓨터들을 전면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자료 은폐 정황은 법망을 피해나가지 못했다. 검찰이 당시 애경산업 및 산하 연구소 직원들의 업무용 PC와 노트북에서 가습기 살균 관련 자료를 검색해 자료를 삭제한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룹 측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무관한 파일만 외부저장장치에 옮겨 저장하고 이전에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는 물리적으로 파괴했다.

자료 은폐뿐만 아니라 검찰 수사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TF까지 꾸렸다. 당시 고 전 대표는 검찰 수사대상 범위에 애경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회 국정조사에서 대비 차원에서 사내 ‘국정감사TF’를 만들었다.

이후 동년 10월 국정감사가 끝난 뒤 TF팀원들이 갖고 있던 자료를 폐기하며 그중 보관할 필요성이 있는 자료는 회사 외부 장소에 은밀히 보관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애경그룹은 외부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연관성을 최소화하려는 동시에 내부에서는 관련 자료 은폐·폐기를 자행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2019년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소비자들의 분노가 더욱 커지고 있다.

2018년 11월 애경산업 상무 A씨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피해 보상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거짓 세무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A상무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금’과 ‘보상금’에 대해 설명하며 보상금을 받을 것을 유도했다. A상무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받으면 국세청이 증여세를 매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속세법 제29조의4 【증여세과세가액】에서는 정신적 또는 재산상 손해배상의 성격으로 받은 보상금은 수취인에게 상속세나 증여세의 과세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국 A상무가 피해자들에게 법령 내용과 정반대의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애경그룹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검찰은 2018년 말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재조사를 시작했다. 수사 4개월여가 지난 지금 검찰은 애경산업, SK케미칼 등 관련업체의 전직 임원 등 6명을 기소했으며 이중 4명을 구속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환경경찰뉴스 임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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