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징용판결 손해보상 판결 보복조치로 반도체 소재 부품 수출규제 단행

日정부 보복 아니라고 하면서 또 다른 규제 고려하는 중
아베 총리 “韓 약속 어겼다 신뢰 깨뜨려” 보복조치 속내 드러내

  • 기사입력 2019.07.04 18:02
  • 기자명 이의정 기자
(사진출처=청와대)
(사진출처=청와대)

일본 정부가 예고한대로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를 4일 단행했다. 이번 규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으로 해석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 1일 발표했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TV와 스마트폰의 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의 액정 소자를 고정하는 일종의 추명 필름), 포토 리지스트(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 에칭가스(반도체 세정에 사용되는 고순도불화수소) 3개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4일부터 단행했다.

한국 기업들은 플루오드 폴리이미드는 전체의 93.7%, 리지스트는 93.7%, 에칭가스는 43.9%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에 이 부품을 일본수입에 의존했던 삼성이나 LG 등 한국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더불어 한국 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는 전 세계의 관련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이번 수출규제를 발표한 배경에 있다.

일본의 이번 수출규제는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신일제철이 일제 강점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해석된다.

이번 일본의 기습적인 수출규제는 과거사와 관련된 외교적 문제를 무역보복으로 치졸하게 대응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자국 언론들도 일본정부의 조치를 자유무역을 지지해온 일본의 입장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부터 29일까지 오사카에서 열린 G20정상회담 공동 성명에서 일본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고 예측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과 투자환경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번 수출규제는 일본 스스로 이같은 발표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 수출규제로 한국은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포괄허가’ 조치가 폐지되고 개별 제품을 수출할 때마다 주무 부처인 경제산업성에 수출허가를 신청해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심사 과정은 통상 90일 정도나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한 가맹국에 유리한 조치가 다른 모든 가맹국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최혜국대우(MFN)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1994) 제11조는 가맹국을 대상으로 관세에 의하지 않은 수출입 수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수출규제는 이 두 가지 조항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교활하게도 이번 수출규제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안전보장상’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GATT 21조에는 안전보장상 필요가 있다면 예외조치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겉으로는 보복 조치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지난 3일 아베 총리가 “국제적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신뢰의 문제”라며 보복 조치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수출 규제가 일본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반도체를 납품받아 완성품을 생산하는 일본 제조사에게도 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대(對) 한국에 대한 추가적인 보복조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허가 신청을 면제해주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수출 규제 강화 대상 품목을 확대하는 방안 및 관세 인상, 송금 규제,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엄격화 등 다각적인 조치를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지난 2013년 곽 모씨 등 7명은 1942년 태평양전쟁 당시 신일제철에 강제 동원돼 피해를 받았다며 서울고법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신일제철은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년 2월 5일 유일한 생존자였던 이 모씨까지 별세하면서 원고 7명이 모두 사망해 선고 결과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 해당 소송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지만 일제강점기에 행한 일본의 만행을 인정한 판결이라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

환경경찰뉴스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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