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수어법 시행 4년, 해결되지 않는 농아인 소통 장애

한국수어에 대한 사회 인식 여전히 부족해

  • 기사입력 2020.10.09 10:58
  • 최종수정 2020.10.09 12:58
  • 기자명 고명훈 기자
(사진=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사진=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이 서로 맞지 않으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마다 이것을 쉽게 익혀 편히 사용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 서문이다. 모든 백성이 차별없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 한글이다.

오늘로써 우리 글이 세상에 나온지 5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한글로부터 소외된 국민들이 있다. 청각장애인과 수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농아인이다.

농아인은 한국어가 아닌 ‘한국수화언어(이하 한국수어)’를 사용한다. 정부는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하고 공포해 한국수어에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했다. 이로써 한국수어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와 같은 독립된 언어가 됐다.

그러나 한국수어법이 세상에 나온지 4년이 넘은 지금, 농아인은 여전히 언어소통에 불편함을 호소한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이 언어에 아직 깊게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은 지난 8월 3일과 4일 한국수어법 시행 4주년을 맞아 논평을 발표한 바 있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 버젓이 존재하는 감각장애인들의 장애물을 지적하고 이를 허물어달라는 호소의 메시지였다.

논평에서 장애벽허물기는 "오랜 세월 농인들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수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이러한 편견은 수어통역 서비스의 부재를 만들었으며 수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상황까지 만들기도 했다"라고 말문을 띄웠다.

그러면서 한국수어법 시행 이후의 상황에 대해 "정부의 수어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어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라며 "수어를 기초로 한 농교육은 오리무중이다. 공공정보에 대한 접근이나 공공기관의 이용에서 수어통역 지원도 부족하다. 농인들이 수어로 의사를 표현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도 아직은 멀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매일 방송에 나오는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는 수어통역사가 배치돼 있다. 농인들이 관련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장애인 단체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브리핑 초기에는 수어통역 서비스가 일체 없었다. 농인들은 이처럼 긴급재난의 상황에서도 정보접근에 제한을 느껴야만 했다.

언어는 '정보접근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생명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도구다. 세종대왕은 우리 국민이 이 도구를 모두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이라는 훌륭한 자산을 남겨줬다.

그 누구도 제한없이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회 인식 변화의 노력이 시급하다.

한글날을 맞아 농아인의 삶의 질 향상과 한국수어의 완전한 정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보자.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도 가져보자.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