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농협 ‘사과상자 임대료’ 갑질 내막

상자박스 장기임대료 인상 요구에 중도매인들 반발
경매 중단 사태로 사과선별 인력 26명 실직 위기
국민청원에 농협 임원-상자업체 유착 의혹 제기

  • 기사입력 2020.12.28 17:09
  • 최종수정 2020.12.28 19:30
  • 기자명 고명훈 기자
안동농협 공판장 사과상자. (사진=환경경찰뉴스)
안동농협 공판장 사과상자. (사진=환경경찰뉴스)

안동농협(조합장 권순협) 공판장에서 사과상자 위탁업체의 지속적인 상자 공급 중단으로 경매차질이 잦아지자 농민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은 한편, 선별작업과 상하차 작업을 도맡아 했던 용역업체의 인부 26명은 졸지에 실직위기에까지 내몰렸다.

사과상자 위탁업체인 영농조합법인 (주)통일농산(이하 통일농산)이 상자 임대료를 조정해달라는 중도매인들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최근 농협은 “사과상자의 일방적 공급중단으로 선별작업이 계속 중단될 시 용역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통일농산에 전달했다.

 

상자위탁업체 장기임대료 조건, 농민들 “너무 가혹하다”

텅 비어있는 선별작업장. 사과상자 위탁업체의 지속적인 상자 공급 중단으로 선별작업과 상·하차를 맡은 용역업체 인부 26명이 실직위기에 놓였다. (사진=환경경찰뉴스)
텅 비어있는 선별작업장. 사과상자 위탁업체의 지속적인 상자 공급 중단으로 선별작업과 상·하차를 맡은 용역업체 인부 26명이 실직위기에 놓였다. (사진=환경경찰뉴스)

이번 경매차질 사태의 발단은 통일농산이 중도매인에게 내건 장기임대료 조건이었다. 조건에 따르면 중도매인은 상자를 사용하기 위해 첫 달에 상자 1개당 150원씩 임대료를 지급하고 한 달이 지나면 보름에 150원씩, 3개월이 지나면 상자를 구입해야 한다. 중도매인들은 “경매 때마다 사과상자 평균 2만~3만 개의 낙찰되는 물량을 감안할 때 통일농산의 임대료 조건은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다”라며, “같은 안동시 내 사과상자를 직접 공급하는 안동청과가 임대료로 첫 달 150원씩만 받고 추가 수수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와 비교해도 통일농산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 조건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 최대규모인 안동농협 공판장은 사과 물량이 감당되지 않자 작년 사과상자 위탁업체인 통일농산과 계약을 맺고 54만 개의 상자를 위탁했다. 통일물산은 농협에 1개당 4천 원의 보증금을 주고 농민으로부터 유상 대여하는 방식으로 상자를 공급하고 있다. 중도매인이 사과를 공판장에 가지고 오면 공판장은 이를 크기와 품질에 따라 나눈 뒤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경매에 붙인다. 경매에서 사과가 낙찰되면 낙찰자는 상자를 다시 반납하는 방식이다. 경매를 위해서 상자는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중도매인들은 통일농산의 장기임대료 조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8월에는 이같은 갈등 때문에 이틀간 경매가 중단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당시 농협은 농민들이 출하한 사과를 모두 사들이고 6억 원이 넘는 금액의 손해를 입어 농민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적공방 끝에 농민들은 2억 원을 배상해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상자위탁업체인 통일농산과 중도매인의 갈등은 계속됐고 지금도 원활한 상자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농협, 농민 모두가 손해를 입고 있다. 농협은 경매 차질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다른 지점에서 상자 1만 5천개를 빌리고 3만 개를 추가 제작하는 등 대책을 강구했지만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농협 임원-상자업체 유착관계 의혹

지난 16일 청와대 게시판에는 안동농협 공판장 임원 개인의 갑질과 횡포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해당 청원글 댓글창에는 농협 임원과 상자위탁업체의 대표가 처남-매부지간이라며 유착 관계를 주장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사진=환경경찰뉴스)
해당 청원글 댓글창에는 농협 임원과 상자위탁업체의 대표가 처남-매부지간이라며 유착 관계를 주장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계속되는 경매차질의 피해는 선별작업과 사과 상·하차 작업을 맡은 용역업체 직원들에게까지 돌아갔다. 안동농협 공판장은 선별작업과 상·하차 작업을 위해 또 다른 용역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작업인부를 채용해 공판장 내 작업장과 더불어 외부 작업장 2곳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안동농협 공판장 일용직 인부 110~120명 중 외부 작업장에서 일해온 26명이 일자리를 잃고 길바닥에 내몰린 상태다.

이런 가운데 공공연한 게시판에 이번 경매차질 사태와 관련한 한 가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농협의 고위급 임원과 상자 위탁업체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다는 의혹이었다.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안동농협 공판장 임원 개인의 갑질횡포를 막아주세요”라는 청원글이 게재됐다. 이번 경매차질 사태로 실직위기에 놓인 용역업체의 인부 26명 중 한 명인 A씨가 올린 글이다. 그는 “농협 임원 B이사는 안동농협 공판장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농협직원은 물론 중도매인, 상하차작업반 농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라며, “B이사는 농협 임원인에도 불구하고 농협이 발주한 사과상자 위탁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청원글 댓글창에는 B이사와 상자업체 대표가 처남-매부지간이라는 주장의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댓글에는 “농협 이사와 상자업체 대표는 처남매부 사이다. 상자업체 대표는 바지대표일 뿐이고 실질적인 운영주는 농협 이사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본지가 이에 대해 안동농협 공판장측에 묻자, 관계자는 “B이사와 상자위탁업체 대표가 처남매부라는 소문이 많이 돌고 있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B이사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답했다.

비어있는 사과박스. (사진=환경경찰뉴스)
비어있는 사과박스. 사과상자 위탁업체의 지속적인 상자 공급 중단으로 선별작업과 상·하차를 맡은 용역업체 인부 26명이 실직위기에 놓였다. (사진=환경경찰뉴스)

이외에도 B이사를 둘러싼 구설수는 끊이질 않는다. 지난 11일 B이사는 안동농협 이사회에서 경매차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던 도중 웃옷을 벗고 직원에게 욕설과 협박을 하는 등 난동을 피운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는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안동농협측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끝내 답을 듣지 못했다.

한편 농민들 사이에서 B이사는 권순협 안동농협 조합장의 사실상 오른팔로 불리고 있다. 권순협 조합장은 지난해 지역 최다선인 6선에 성공하면서 20년이 넘도록 조합장 자리를 집권하고 있다. 오랜 집권 기간동안 각종 비리 의혹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전국 조합장 비리척결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활빈단’은 권 조합장이 조합 직원의 인사, 승진, 예산 심의, 비상임 이사와 감사 추천 등과 관련해 무한한 권한을 가지고 독단 운영을 펼치고 있다며 지난해 검찰에 고발했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