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제2의 법정농단 사건, 재판부와 주고받은 수상한 ‘비밀서면’

밀봉된 서류를 재판부에 직접 갖다 줘.
알게 모르게 ‘재판거래’ 의혹 대두

  • 기사입력 2021.05.21 19:57
  • 최종수정 2021.05.25 14:54
  • 기자명 조희경 기자

 

뇌관이 터졌다. 한 법원 공무원이 법원사무관 일반승진시험 불합격 처분 무효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에서 재판장과 소송수행자 사이 직접 주고받은 ‘밀서’가 드러나며 소송 농단 사태 의혹을 키우고 있다.

법원일반직 공무원은 법원사무관으로 승진을 하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내부 승진시험에 합격을 해야 하는데 15여년 전부터 경쟁이 치열해져 법원 업무에 공백이 생기는 등 법원공무원 승진시험 수험생들의 근무태도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이를 계기로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에 올라온 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태 의혹 이후 드러나지 않았던 ‘재판거래’ 의혹을 대두시키고 있다.

법조 비리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보여진다.

(사진=현직 법원 행정사무관이 코트넷에 올린 글 갈무리)

 

현직 법원공무원인 A씨는 2018년도에 응시한 법원사무관 일반승진시험에서 시험점수로는 합격점수를 받고도 30%에 해당하는 평정점수를 가산한 결과 불합격을 받고 이 처분이 무효라는 확인 소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재판과정에서 A씨도 모르는 비밀서면이 재판장에게 직접 제출된 것이다. 변론종결을 앞두고 재판장이 피고 법원행정처장의 소송수행자들에게 석명준비 명령을 했는데, 변론이 종결되고 재판부에 비공개 석명사항 외에 비밀서면이 제출된 사건이었다.

석명준비명령이란, 재판장이 소송관계를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소송당사자들에게 법률상 사항에 대해 질문하고 증명을 하도록 촉구하는 소송법 제도지만, 소송 한쪽 당사자 모르게 비밀서면을 재판부가 주고받으며 충격을 준다.

A씨 사건에서 피고 법원행정처를 통해 접수되지 않은 비밀서면의 분량은 약 50페이지 정도 된다. 이를 전달한 소송수행자가 대봉투에 밀봉된 서류를 재판부에 직접 갖다 준 것으로 시인했다.

소송 서류는 접수를 하고, 이 서면을 상대방에게 송달을 하여 방어권을 보장하여야 하는 데, 법원 사이트에서 조회되는 ‘나의 사건검색’결과에서도 열람할 수 없는 비공개 석명사항 외에 비밀서면이 변론종결 후 재판부에 직접 전달된 것이다. 이는 변론주의 원칙상, 변론기일 후 변론기일에 진술을 한 것만 판단 자료, 판단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규칙에도 위배 됐다.

따라서 A씨 사건에서 변론기일에 진술되지 않은 비공개 자료를 재판부가 판단 자료 근거로 삼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이 나온다. 이른바 모종의 ‘재판거래’가 있지 않았나 의심되고 있다. 

(사진=본지 기자와 대법원 공보관과 주고 받은 메일 답변 갈무리)
(사진=본지 기자와 대법원 공보관과 주고 받은 메일 답변 갈무리)

이에 대법원은 ”비밀서면이 인정되냐“라는 본지 물음에 대해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 각종 소송법에 비밀서면 비공개 자료에 관한 규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서초동 변호사 또한 “그런 거는 본 적도 없고 들은 사실도 없다.”라며 “통상적으로 법원이 누구한테 뭘 석명하라고 할 때. 다 공개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개재판인데 그렇게 할 거 같으면 법원 문만 열어 놓고 나머지 서류들 왔다갔다하는 것들을 비공개로 한다는 것인데, 모든 재판은 공개되고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는 명백한 재판청구권 침해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와 관련 본지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놀랍게도 A씨의 소송 상대방이었던 법원행정처장의 소송수행자 사이에 나눈 대화에서 재판장에게 직접 갖다 준 비공개 문서에 대한 실체가 인정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A씨의 소송 상대방이었던 법원행정처장의 소송수행자 김 모 사무관과 나눈 대화다.

A : 석명사항을 부장님이 내라고 하니까 이거 비공개자료라고 하면서.

김 : 아 아. 예 예. 직접 비공개로 낸 거.

A : 그렇죠. 거기에 무엇, 무엇을 냈습니까?

김 : 그건 저도 못 봤어요.

A : 아. 그러면 누가 냈어요.

김 : 직접 제출했어요.

A : 그러니까 누가.

김 : (내가) 완전히 밀봉을 해가지고. 개봉 안 되게.

(생략)

A : 그러면 대충 두께가 몇 장정도 된 것 같아요.

김 : 그냥 대봉투 안에 들어갈 정도였으니까?

A : 들어갈 정도니까. 당연히 2장도(들어가고) 대봉투안에는 50장도 100장도 들어가거든요. 대충.

김 : 그냥 뭐 두꺼워봤자 50페이지도 안 될 것 같은데.

(생략)

김 : 잠깐만요 (아마 책상 위의 종이 두께를 재보는 듯 – 9초 정도).

A : 예 예. 그래도 대충은. 대충만. 정확한 것 뭐.

김 : (9초 정도 후) 한 하여튼 50장 정도 분량.

A : 예.

김 : 하여튼 그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한편, 해마다 500~600명이 응시하는 법원사무관 일반승진시험 공부 탓에 업무는 뒷전이고 시험준비를 하는 베테랑 공무원들의 광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환경경찰뉴스 조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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